수레바퀴 아래서, 정체성 없이 무너지는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

『수레바퀴 아래서』 – 무너지는 영혼, 그리고 우리 시대의 한스들

지금 현재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집 앞 고등학교 교실 안에는 저녁을 넘어 가는 시간에도 여전히 책상 위에 학생들로 가득찼다. 하루가 저물고 밤으로 가는 그 시간에도 조용한 침묵의 공간 속에서 종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책을 보며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내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장면이다. 경쟁이 전부가 되어버린 사회, 성적과 스펙이 인생을 결정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한스 기벤라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 소년의 성장과 몰락만을 이야기 한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교육의 폭력성과 사회적 강박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강한 동질감과 마음의 무거움을 남겨준다.

몰락해 가는 모범생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에서 가장 촉망받는 소년이었다. 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그는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혹독한 학업과 규율 속에서 점차 무너져 내려간다. 자유롭고 개성적인 친구 하일러를 만나면서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사회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결국 한스는 신학교를 떠나 방황하다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고립되고 만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한스의 몰락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회가 정해준 길을 묵묵히 따라가려 했을 뿐인데 한스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한스는 왜 행복할 수 없었을까?

 교육이라는 이름의 억압

한스는 그저 '좋은 학생'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지만 그의 삶은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학교에서 요구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순응이었다.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이고, 이의 없이 따르는 것. 이를 위해 학생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개성을 버려야 했다.

 

이것이 비단 19세기 독일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같은 방식으로 길러지고 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창의성보다 정답을 찾아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좋은 스펙에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결국 사회가 정한 기준 속에서만 의미를 찾게 된다. 그러나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스의 비극은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심리적 고립과 번아웃

한스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는 '우울증'과 '번아웃'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인다. 성취를 위해 쉼 없이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지쳐갔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간 결과는 결국 탈진이었다.

 

한스를 보며 우리 자신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청소년들과 직장인들은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나은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한스처럼 무너지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무너져도 사회는 그저 새로운 한스를 찾아낼 뿐이다.

자유를 선택하는 용기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은 친구 하일러였다. 그는 정해진 틀에 맞추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취급받았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운가?

 

우리는 한스를 동정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또 다른 한스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교육 시스템, 직장 문화, 사회 구조,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현대의 한스들을 무한히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유'를 이야기하고, '개성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하일러 같은 삶을 용인하며 살고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수레바퀴 아래서』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한스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인간'을 만들 것인가? 개인의 개성을 억누르고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결국 또 다른 한스를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 시대의 한스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다시 수레바퀴 아래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박지희 ❘ 김선형 ❘ 코너스톤